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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건

세상에서 가장 가학적인 사건

일본에서 가장 유명하고 엽기적인 사건이자, 인류 역사상 존재했던 범죄 순위에서 15년간 압도적으로 1위를 기록한 사건입니다.

일명 '여고생 콘크리트 포장 사건'

해당 범죄는 1988년 11월 25일 ~ 1989년 1월 5일까지 약 40일간 이루어진 범죄입니다.

 

피해자의 사진

 

-개요-
1988년 11월 25일 당시 18세 고등학생 준코는 주 2회 플라스틱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후 8시 일을 끝내고 8시 19분경 자전거를 타고 귀가를 하게 됩니다.
이 여고생은 자전거를 타고 한적한 곳을 지나가게 되는데 그 모습을 소년 A가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소년 C에게 자전거를 걷어차라고 지시하게 되고 소년 C는 오토바이로 쫓아 가 걷어차서 넘어뜨리게 됩니다.
그 이후 소년A가 준코에게 접근하여 "저 녀석은 이 마을에서 위험한 놈이라 내가 집으로 대려다 주겠다"라고 이야기하고
준코 집에서 약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큰 창고로 데려가게 됩니다. 준코가 이상한 느낌을 받고 저항을 하자 
소년 A는 "방금 전 녀석은 나의 동료다. 야쿠자에서 옛날부터 너를 노리고 있었다 내 힘으로는 간부에게 목숨만 붙여달라고 할 수 있다 대신에 나와 함께 호텔을 가게 될 거다"라고 한 뒤 러브호텔을 가게 됩니다.

당시 호텔(아직 영업중)

소년 A는 운동선수 출신이었기에 강압적으로 준코를 겁탈합니다. 이후 다른 동료들에게 전화를 하여 소년 B, C, D를 부릅니다.
이후 준코를 호텔 밖으로 데려가 앞에 있는 공원에서 술을 마시게 되고, 이때 소년 C가 자신의 집에 빈방이 있다며 준코를 거기로 데려가자고 합니다.
※당시 소년C의 아버지는 오키나와로 사원여행을 떠난 상태였고, 집에는 소년 C의 어머니와 형이 있었습니다.

소년C의 집

소년 C집 2층에 준코를 감금한 뒤 항상 계단에 감시역을 두고 10여 명의 소년들이 이 방에 왔다 갔다 하면서 준코를 능욕하게 됩니다.
이때 소년 C의 어머니가 이상함을 느끼기도 하고, 준코와 마주치기도 하지만 신고를 하지 않습니다.
※해당 사건의 총 피의자 수는 남, 여 모두 합쳐서 18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여성은 1명 있다고 합니다.)
주범 4명은 킥복싱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에 준코를 세워두고 허벅지와 다리를 중심으로 킥복싱 연습을 하기도 합니다.
이때 준코가 제대로 걸을 수 없게 되고 경찰서로 갈 것을 두려워해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1988년 11월 30일 실종으로 신고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녀를 협박해 집으로 전화하게 합니다.
내용은 "집이 싫어 가출한 것이고, 실종신고를 했다면 취소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부터 소년들은 준코에게 끔찍한 학대를 하게 됩니다.
12월 2일 소년들이 모두 자고 있을 때 준코가 먼저 눈을 뜨게 되고 몰래 거실로 내려가 경찰에 전화를 겁니다.
하지만 가해자 중 1명이 거실로 내려오는 소리를 듣게 되고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현관으로 나가 도망치지만 잡히게 되고 다시 집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이때 경찰서에서 집으로 전화가 오게 되는데 경찰이 "방금 소녀의 목소리로 경찰서에 신고 선화가 왔었는데 무슨 일이냐?"라고 물었고 소년은 "잘못 건 거 같다 이 집은 여성이 없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습니다.
이때 부억에 있던 어머니가 소녀의 상태를 보고 "집으로 돌려보내자"라고 합니다. 하지만 4일 후에도 준코가 2층에서 내려오지 않자 준코가 가지고 있던 소지품 중 주소록을 보고 준코의 집에 전화를 걸게 됩니다.
소년의 어머니가 "준코라는 아이가 그곳에 살고 있나요?"라고 묻게 되고 준코의 어머니가 이름을 물어보았지만 소년 C의 어머니는 다른 이름을 대고 전화기를 금방 끊게 됩니다.
※이후 경찰조사에서 준코를 찾는데 상당한 혼란을 일으키는 계기가 됩니다.
이후 소년C의 어머니는 준코를 몰래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현관 밖으로 내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밖에서 매복하고 있던 소년 B와 소년 C의 형이 준코를 다시 잡아 집 앞에 있는 전봇대를 타고 다시 2층으로 올려 보냅니다.
소년 C는 어머니가 이런 일을 하게 된 것을 알게 된 후 어머니를 폭행하게 됩니다.
이 이후부터는 정말 끔찍한 고문이 시작됩니다.
1. 전라상태로 아이돌 댄스를 웃으면서 추게 하기도 하고
2. 그 노래에 맞춰서 구타를 하기도 하며
3. 다리에 라이터 기름을 부어 불을 붙이기도 합니다.
4. 바퀴벌래를 먹이기도 하고
5. 생식기 안에다가 폭죽을 터뜨려 내장을 망가뜨리기도 합니다.
※해당 고통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게 되는데 발견했을 때는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고 합니다. 또한 스트레스로 머리카락이 거의 다 빠졌다고 합니다.
육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준코에게 너희 어머니는 죽었다면서 심리적으로도 괴롭혔습니다.
연휴가 있는 연말연시에 소년 C의 부모가 집에 있었기에 준코가 있는 방에 물만두고 방치를 하게 됩니다. 이때 준코의 몸상태는 최강의 상태로 치닫게 됩니다.
감금 40일째 소년A가 마작을 하다 큰돈을 잃고 화가 난 상태로 준코에게 화풀이를 하기 위해 다른 소년 3명을 불러 준코를 폭행합니다.
그 과정에서 준코가 제발 죽여달라고 애원하게 되었고 카세트 플레이어와 아령을 준코에게 던졌고 복부와 머리에 맞았고, 토사물이 목에 걸려 사망하게 됩니다.
1월 4일 저녁 10시쯤 소년들은 "좋은 시간이었다. 사우나에나 가자"며 소년 C의 방을 나가게 됩니다.
다음날 소년C의 형이 먼저 준코를 발견하게 되고 이후 사우나에서 돌아온 소년들이 준코의 상태를 발견합니다.
소년 A가 드럼통에 넣어 시멘트로 굳히는 것을 제안하게 되고 소년 A 집 주창장 앞에 모여 협력하여 드럼통에 준코를 움 기고 콘크리트를 부어 굳히게 됩니다.
소년 A가 빌린 차를 통해 도쿄의 한 해변 공터에 버리게 됩니다.
※당시에는 공터였지만 지금은 건물이 있음

시체 유기장소(오른쪽은 현재모습)


이후 약 2주 뒤인 1989년 1월 23일 소년 A와 B가 지난 12월에 있었던 아다치구 내에 호스티스를 호텔로 데려가 겁탈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해당 12월에는 준코가 방에 감금되어 있던 상태였습니다.
이 겁탈 사건으로 인해 아야세 경찰서로 체포가 됩니다. 이후 3월 29일 아야세 경찰서로부터 수사관 2명이 소년 2명이 있는 감별소에 파견을 오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소년 A와 B의 집을 압수 수색하게 되는데 이때 소녀의 속옷이 발견됩니다. 수사관중 한 명이 여죄를 조사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면 안 되지 않냐?"라고 하자
소년 A는 소년 B가 자백했다고 판단하고 "죄송합니다 제가 죽였습니다"라고 자백하게 됩니다. 이날 해당 수사관은 원래 목적이었던 사건이 아닌 준코의 사건을 듣게 되면서 준코가 유기되었던 해변공원을 찾게 되고 한 드럼통을 발견합니다.
발견 후 이 드럼통을 경찰서로 가져가게 되고 다음날 드럼통을 해체하게 되는데 여기서 3개월 전에 실종되었던 준코의 시체를 발견하게 됩니다.
-부검 결과-
뇌가 1/2 정도 녹아있었고 몸무게는 32kg까지 줄었으며 생식기가 1개로 보일 정도로 많이 망가져 있었고 장기 대부분이 손상된 상태였으며 소년들의 타액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후 범행에 가담했던 소년, 소년 18명이 모두 잡히게 됩니다.
도쿄 아다치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폭력단 '극동회'에서 활동을 했던 사람들로 길을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절도, 폭행, 강간 등을 저지르는 인간들이었습니다.
※당시 아다치구는 치안이 안 좋았다고 합니다.

 

범인들

-범인 정보-
소년 A 본명 : 미아노 히로시 당시 18세(우리나라 기준 고3) , 리더
아버지가 증권회사 사원이었으며 어머니는 피아노 강사였고 여동생이 1명 있었습니다.
당시 아버지의 분륜 으로 아버지는 집에 거의 없었고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관심이 없었다고 합니다.
중학교 시절 유도로 지역에서 TOP5에 들어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훗카이대 부속고등학교로 추천 입학한 후 유도부에 들어가지만 이후 선배들에게 심한 폭력과 체벌을 받았고 그 반동으로 많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합니다.

소년 B 본명 : 오구라 유즈루 당시 17세 서브 리더
키가 190cm로 상당히 건장한 체격이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게 되고 어머니의 손에서 자라게 됩니다.
초등학교 때 스모대회를 출전한 경험이 있으며 중학교 때 소년 A를 선배로 만나게 됩니다.
사립고등학교에 들어가지만 3개월 만에 퇴학당합니다.

소년 C 본명 미나토 신지 당시 16세(감금 장소 제공자)
부모가 일본 의회 당원이었으며, 아버지가 사무국장 어머니는 주임 간호사였습니다.
중학교 시절 소년 A의 이년 후배, 공업고등학교 입학 후 2학기에 자퇴하게 됩니다.

소년 D 본명 와타나베 야스시 당시 17세
부모는 이혼을 했고 어머니의 손에 자랐으며 소년 A의 후배였습니다.
조용한 성격에 소유자였지만 누나가 소년 A와 사귀게 되면서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지만 금방 중퇴하게 됩니다.

-재판-
1989년 7월 31일 주범 A, B, C, D의 첫 공판이 열리게 됩니다.
※이 사건을 맞기 위해 변호사들이 줄을 섰다고 합니다.
소년 B와 소년 C의 변호사는 '이 사건은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라고 주장하였고, 소년 A의 변호사는 '살해할 의도가 없었기에 미필적 고의'를 주장합니다.
소년 D만이 모든 사실을 인정합니다.
※형량은 아래 사진으로

형량

※현재는 모두 만기 출소한 상황


-판결문의 일부-
잔인하고 극악하고 비인도적인 면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으며, 중대하고 흉악한 범죄이다.
동기는 매우 반 사회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피해자인 여고생을 괴롭혀서 죽였다고 밖에 볼 수 없으며 동기의 참작여지가 없다
피해자 부모의 분노, 슬픔 그리고 사회에 끼친 충격과 불안을 생각하면 피의자들의 행동은 사람의 탈을 쓴 귀축으로 밖에 볼 수 없다